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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이 없는 집에서 책을 그리는 작가 서유라

박정준(서울대 비교문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출판저널 2009년 1월호 인터뷰

 

미술과 문학의 상호작용 

  김동인의 「광화사」에서부터 서머싯 모옴의 『달과 6펜스』, A S 바이어트의 『마티스 스토리』 등은 소설가가 활자매체를 통해 미술에 말을 건 작품들이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예술가가 겪는 소외의 문제에 천착한 ‘예술가소설’은 물질적인 부와 시민사회로부터 격리된 예술가가 ‘작품’을 통해 변증법적으로 세상과 소통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우리와 동시대에 활동하는 예술가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또 그들은 어떻게 책을 형상화하고 있을까. 

  책과 미술의 만남은 끊임없이 있어왔다. 활자매체가 표현하기 힘든 이미지를 캔버스 위에 풍부하게 담아내는 화가의 능력은 수많은 작가들을 동경에 빠뜨리기 충분했을 듯하다. E T A 호프만의 「모래아저씨」Der Sandmann를 보면, 언어로 온전히 포착하기 힘든 한계로 인해 회화의 풍성한 표현력을 강조하는 대목이 눈에 띈다. 

  여기저기 떠다니는 단어들을 포착해서 흰 원고지에 자신의 사유를 담아내는 작가들처럼 화가들은 하얀 캔버스에 자신의 사유를 붓을 통해 형상화시킨다. 작가들이 쉴 새 없이 파지를 만들며 글쓰기와 사투를 벌이듯, 화가들도 끊임없이 물감을 걷어내고 덧칠을 거듭하면서 불멸의 욕망을 추구한다. 작가들이 혼신을 다해 세상에 내놓은 작품들이 출판되자마자 잠깐 동안 성취감이나 결실을 끝으로 어김없이 배반과 환멸로 귀결되듯이, 오래도록 음습한 작업실에서 날빛에 고독을 동무삼아 그린 그림들은 전시회에 걸리자마자 작가에게 모호한 감정을 안겨준다. 이렇듯 화가와 작가는 매체는 달라도 분신처럼 서로 닮아있으며 서로에게 그리움을 호소하기 마련이다. 이른바 문학과 미술의 상호작용이 시작되는 것이다. 


멈춘 달력에서도 시간은 간다 

  젊은 화가 서유라를 만나기 전에, 필자의 머리에 신산스러운 잡념으로 스친 것은 딜레탕트처럼 마구 읽어댄 예술가소설에 재현된 화가의 이미지들이었다. 무엇인가를 험상궂게 부수고, 절망에 몸서리치며 광인처럼 절규를 퍼붓고, 오래도록 작업한 유화에 검정색을 범벅하며 자신의 존재를 파멸로 몰고 가는 인물이 ‘고정관념’처럼 저장되었던 것이다. 

  작품성과 세간의 평가라는 각기 이루기 힘든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성공한 작가’라는 선입관이 영 머리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그녀의 테이블 위에는 시간은 맞게 흘러가도 날짜가 멈추어버린 시계가 놓여있었다. 날짜가 틀렸음에도 불구하고 천연덕스럽게 흘러가는 시계는 서유라를 은유적으로 알리는 것 같았다. 모두들 책의 위기를 관성처럼 말하는 시대에 책을 소재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가 화석화된 유물을 바라보는 상고주의처럼 느껴졌다. 다시 말해, 우회적으로 그녀 자신의 시대와 시간을 가늠하기 힘들게 만든 원인이었다. 

  하지만 실제 만난 화가 서유라는 가뿐한 몸놀림처럼 수줍게 웃는 게 제격인 그 또래 사람이었다. 다만, 최근 그녀가 인상 깊게 보았다는 <디 아워스>처럼 여러 세대를 거듭해도 공감 가능한 감성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간 삶에 대한 지평이 그녀의 외양에 녹아있었다. 이러한 조숙함은 그녀의 시대가 단순히 자신의 또래에만 집중되지 않는다는 점을 뜻하는 듯했다. 책을 통해서든 미술을 통해서든 나와 다른 사람들이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싶은 그녀의 욕구는, 시대에 맞게 옷을 갈아입을 줄 아는 아량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책’ 재현하기 

  책을 담아낸 그녀의 그림은 인습적이지 않았다. 화려하게 장정된 가지각색의 양장본 책들을 보기 좋게 진열해서 예쁘게 그리는 것에 머물지 않았다. 대신 높다랗게 쌓이고 포개진 책들은, 책을 선택하고 구매하며 읽고 진열하는 우리들의 욕망과 허위의식을 은밀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그림이나 책 모두 시장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시대에 그녀의 그림은 고답적으로 소비주의를 꾸짖지도, 그렇다고 해서 섣부르게 호들갑을 떨며 소비의 달콤함을 찬양하지도 않으며 독특한 위치에 서있었다. 소비의 시대에 판매전략에 둘러싸인 것은 도처에 널려있다. 책과 그림은 작가의 의도가 적절하게 이해되지 않은 채, 외양적인 이미지의 벽에 갇히기 십상이다. 그녀의 그림 속에서 냉소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광고모델처럼 공허한 알몸 그대로 우리에게 급습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책을 부단히 쌓아놓으려는 우리 시대의 후미진 욕망이다. 

  “줄곧 여성들이 왜 아름답게만 재현될까 고민했어요.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은 명품선호현상처럼 꾸며진 것에 대한 집착 같았습니다. 하지만 일단 저부터 매력적으로 표현된 잡지 이미지에 탄복하듯이,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에서 그러한 문화를 원론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에요. 그보다는 여성의 눈으로 직접 명품이나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그녀의 그림은 팝아트의 후예처럼 익숙한 것의 의미를 거리낌 없이 내보이면서 진부함 속의 낯선 충격을 경험하게 해준다. 친숙한 이미지로 채워진 책이 담겨있는 그녀의 그림은 익숙한 이미지로 아로새겨지면서 우리 곁에 다가오지만, 좀처럼 볼 기회가 없는 뒷모습을 보는 것처럼 복잡다단한 인상을 각인시킨다. “저는 대중이 잘 모르는 현학적인 이미지로 그리기보다, 잘 알려진 것을 이용해서 여러 사람들과 폭넓게 소통하고 싶어요.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차용해서 제 작품에 녹여내려고 하죠.” 체할 만큼 널려 있는 세상의 일상성은 서유라와 만나면서 낯선 세계로 진입하며 인습적이지 않은 의미를 획득한다.

 

책을 그리며 만나는 풍경 

  책으로 둘러싸인 그녀의 그림의 주제는 책을 대하는 인간 삶의 내밀한 풍경이었다. “감히 제가 삶을 대변할 수 있다면, 퇴적층처럼 깊이 쌓인 인간 생애를 다루고 싶어요. 제 그림이 그러한 퇴적층이 비로소 올라온 지층 같았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도 정직한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제가 직접 본 것과 관심 있는 주제를 그리되, 특정한 주제에만 국한하고 싶지 않아요. 천기누설은 아니지만 제 장기적 계획을 밝히기 어려운 게 앞으로 작품세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모될지 저조차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녀의 그림이 짙은 지성미를 풍기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세계가 관념적인 아카데미 담론에 치우쳐있지 않은 힘은 무엇일까 “오래도록 학생으로 지내다 최근에 와서야 본격적인 화가가 되었지만, 앞으로도 공부하는 자세를 잃고 싶지 않아요. 작품에 불교나 진화론, 페미니즘이나 미술사를 삽입하려는 시도도, 주제를 한정짓지 않고 꾸준히 확장시키려는 바람에서 나온 것이에요. 창작을 하는 데 여행이나 혼자 있어보는 시간 못지않게,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이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져요. 또한, 제가 책을 좋아하는 만큼 책을 통해서 얻는 착상도 결코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녀의 그림이 빛나는 이유는, 타고난 손재주에 안주하지 않고 부단히 자신의 세계관을 넓히고 싶은 의도가 작품에 투영되기 때문일 것 같다. 또한, 여백이 거의 없이 빽빽하게 책으로 휩싸인 그림은, 책이 갖는 다양한 모양을 정밀하게 담아내며 책의 수많은 얼굴을 재현해낸다.    

  그녀의 말처럼 그림에는 아직껏 살아온 화가의 삶이 생생하게 스며들어 있었다. 그녀가 읽은 책들, 본 것들, 그리고 작품이라는 머나먼 섬을 향해 항해를 지속했던 기억이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었어요. 막연히 책 속에는 세상의 모든 비밀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것 같았어요. 원래 책에 본격적으로 천착해서 작품세계를 꾸려가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니었고, 하나둘씩 기억의 편린을 좇다 보니 어느새 지금에 다다른 것 같아요. 책을 그리는 행위는 수수께끼나 숨은 그림 찾기처럼 무엇인가의 의미를 풀어나가는 과정이에요. 최근에는 책뿐만 아니라 잡지도 두루 읽는 편이에요. 최신 트렌드도 민감하게 파악할 수 있고 좋은 기사나 이미지가 있으면 스크랩을 해두었다가 추후에 작품에 반영하기도 합니다.” 

 

젊은 예술가의 창작의 산통 

  늠름하게 자신의 창작세계를 소개한다고 해서 어디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 호락호락하기만 할 것인가. “화가의 가장 큰 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점 같아요. 창작하는 시간은 오롯이 저 혼자 감내해야 할 몫이죠. 그림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미처 정성을 다하지 않고 내놓은 작품들은 고스란히 제 치부를 훤히 드러내기에 민망해집니다. 게다가 100호 이상의 대형그림을 그릴 때는 시간도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체력적으로도 고단해지죠. 하지만 일욕심이 많아서인지 과작인 편은 아니에요. 제가 가장 난해하게 생각하는 문제는 주제에 관한 것이 으뜸이에요. 뭘 그려야 할까라는 고민이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로 직면하죠.” 

  그녀가 줄기차게 관심을 갖는 것 중의 하나는 잊힌 여성들의 삶이다. 또한, 그녀가 잊힌 여성들을 현재에 데리고 올 수 있게 하는 매개는 단연코 책이다. 이러한 다리를 통해 그녀는 여러 역사 속 여성들을 현재에 초대한다. “책을 통해 나혜석의 삶을 인간 대 인간의 만남으로 이해하자 마음이 저려왔어요. 지금은 여성화가들이 과거처럼 억압과 차별에 시달리는 인습은 많이 줄었어요. 작품으로 평가받는 경향이 우세해지고 있죠.” 하지만 그녀의 그림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여성으로 규정하는 여성이 볼 수 있는 눈이 빛나고 있다. 또한, 집요하게 바라봐지는 대상이 되고 있는 여성을, 여성이 본다는 데서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그녀의 그림에는 혁명의 도화선을 묵직한 터치로 지폈던 캐테 콜비츠(Käthe Kollwitz)의 주름 깊은 여성의 억센 손놀림이나, 화가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욕망에 갇힘으로써 일면 자가당착적인 소외에 직면했던 타마라 드 렘피카(Tamara de Lempicka)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형형색색의 줄무늬로 색상을 표현해내면서 색깔의 여러 표정을 포착한 비에라 다 실바와 여러 기구를 포개고 쌓았던 팝아트 작가 아르망(Arman)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대학 시절에는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와 마티스에 매료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작가가 유독 강렬하게 좋기보다, 여러 화가들의 작품성 중 특정한 면이 와 닿는 편이에요. 최근에는 모리스 루이 사뱅(Maurice Louis Savin)의 작품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기본적으로 미디어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책 못지않게 지속적으로 인터넷이나 영화, 음악에도 관심이 많아요. 그림을 그릴 때 인디밴드의 서걱거리는 모래냄새를 음악으로 맡으며 그림을 그리죠.” 

 

결코 내려놓을 수 없는 붓과 책 

  하지만 그녀의 관심은 책에서 좀처럼 이탈하지 않는다. “미술과 문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봅니다. 책을 소재로 삼는 그림이 많아지고, 화가나 미술을 묘사하는 책이 많아지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 같아요. 앞으로 작가들과 미술가들이 공동으로 진행할 수 있는 경계 허물기 프로젝트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글을 쓰는 사람들과 화가가 만나면 상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책이 온전히 팔리지 않는 시대에 책을 그리는 그녀의 바람은 무엇일까. “일단 한국에서는 미술평론이 게재될 수 있는 지면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미술문화가 발전하려면 작가들의 창작행위 못지않게 또 다른 의미에서 창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평론이 활성화되어야 해요. 앞으로 평론이 여러 지면에 발표될 수 있는 기회가 늘기를 바랍니다. 알게 모르게 평론가들의 지적을 통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들을 배우는 수확도 배제할 수 없죠. 특히 저에게는 미술사가인 최열 선생님의 영향이 지대합니다.” 

  그녀는 미술평론의 활성화를 바라면서, “가끔 소재에 관해서 고민할 때 도서출판문화가 끊임없이 새로운 문화를 모색하기에, 저 역시 책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으니 안심이 되기도 한다.”면서 출판문화의 발전 역시 희구하고 있었다.  

  “그림을 열심히 그린 뒤 전시회에서 선보이면 오로지 작품성으로만 평가받기에 긴장됩니다. 동시에 늘 감상자들의 피드백이 궁금해지기 마련이죠. 책을 만드는 사람들 역시 저와 비슷하다고 봐요. 작가들이 독자들과 만나서 소통할 수 있으려면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시장과 문화소비계층이 꾸준히 존재해야겠죠.” 문화의 가치가 사람들의 삶의 질의 복지로 귀결되며 향유될 때 예술가가 품는 소외도 줄뿐더러, 경쟁의 과정에서 혼탁해진 사람들의 배고픈 내면도 두둑해질 것을 그녀는 통찰하고 있었다.   

  “책도 일단 발표하면 회수하기 힘들 듯, 제 그림도 일단 전시회에 선보인 뒤 판매되면 더 이상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없잖아요. 책이 각자의 집 안의 서재에 켜켜이 보관되듯이, 제 그림도 누군가의 공간에서 죽지 않은 채 존재할 테니 더욱 책임감을 갖고 작품세계에 임해야 하겠죠.” 

  앞으로 작품 전시회뿐만 아니라 인터뷰와 블로그 등으로 꾸준하게 대중과 소통하겠다고 벼루는 그녀, 강박적으로 ‘20대’다운 작품세계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 자유롭게 그리고 싶은 것을 찾아 변모하겠다는 그녀, 언젠가 생각과 경험과 지식이 축적된 후 미술책을 손수 써보고 싶다는 그녀, 기회가 된다면 책의 삽화제작도 해보고 싶다는 그녀의 푸른 욕심이, 책의 곰팡이와 먼지를 유쾌하게 마셔가며 익어가기를 바라면서 장흥의 짙은 볕과 이별하며 서울로 향했다.

정물화-시대의 자화상, 동시대 정물화를 보다

박영택(미술평론, 경기대 교수)

2009

 

서유라는 책장, 책이 마구잡이로 뒤죽박죽 쌓여있거나 상하좌우로 확대되고 있는 양상을 그렸다. 마치 읽다가 던져둔 듯한 책들은 펼쳐지거나 접혀진 상태로 드러나 있고 책 등에는 제목이 적혀있다. 유사한 내용의 책들이 제목에 따라 같은 공간에 모여있다. 분류와 체계, 질서가 작동하지만 정작 그 책들은 혼돈 속에 버려져있다. 책이란 지식, 역사와 경험, 기억의 총체들이다. 무수한 사상과 사유들이 혼재한 체 방치된 형국이기도 하고 저 마다 다른 생각과 의견의 갈등과 충돌을 떠올려주기도 한다. 작가는 자신이 습득한 지식의 책을 장정이나 제목을 재가공하여 보여주고 있는데 붓질을 배제한 체 반짝거리는 화면은 이 재가공한 화면이 순간 사실이라고 믿게 만든다. 파편화된 이미지이며 별개의 책에 존재하는 그들은 작가의 의도에 의해 조합되고 정연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보는 이들을 은밀히 책의 내용을 상상하게 하거나 그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편이다. 한편으로는 그 모든 생각과 기억의 덧없음도 은연중 중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