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정(미술 평론가)
2008
책이란 “일정한 목적, 내용, 체재에 맞추어 사상, 감정, 지식 따위를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여 적거나 인쇄하여 묶어 놓은 것”이란 사전적 정의는 책이 시각을 통해 성립되는 개념임을 알려준다. 문자는 지배계층만의 것이었고 책은 문자가 갖는 권력의 의미에 더하여 지식과 정보 특히 고대 사회에서는 삶의 지침인 신앙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기에 권력의 상징체였음은 물론이다. 수태고지의 성모 마리아가 성서를 읽다가 천사를 만나게 됨은 문자해독의 기능이 성스러움과 맞닿아 있음을 은연중 유포시킨다. 문자가 권력의 상징이기는 한자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특별한 신의 계시를 담은 내용을 기록한 갑골문의 존재나 왕조의 정통성을 증명하는 예기(禮器)인 청동기의 기록들이 그것을 증명한다.
근대가 이성의 시대일 수 있었던 이유는 인쇄술의 발달로 대량 출판이 가능해진 때문이 크다. 지식의 축적과 정보 교류는 공동체에 대한 인식, 그 안에서의 개인을 발견할 수 있게 하였다. 지식의 대중화라고 일컬을 수 있는 현대에 소수 개인의 지성적 삶을 상징하던 책은 이제 넘쳐나는 물질 중 하나가 되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폐기하듯 마음의 양식이라는 책도 여러 사람들에게 읽히지 않는 것은 비록 새것일지라도 갈가리 썰려 폐기된다. 우리 시대가 책 10 권을 소장하였다는 것이 그 지역 최고의 부자이자 권력자임을 상징했다는 사실을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다.
서유라의 ‘책을 쌓다’는 말 그대로 ‘쌓은 책’을 보여준다. 채곡이 쌓인 책을 보면 그것이 소수에 의한 독점물이었으며 권력이나 부 또는 신성의 상징물이었다는 생각은 해볼 수 없다. 그것은 갤러리에 놓인 브릴로 상자(Brilo Box)나 무한 확장되는 캠벨 수프 깡통들처럼 그의 화면에는 이 시대 풍요의 상징으로서 책들이 넘쳐난다. 또한 책들을 상자처럼 쌓아 놓은 그의 화면에는 참을 수 없이 가볍고, 바보같고, 몰취미한 예술이라고 치부하며 비아냥의 대상이 되었던 팝아트가 보여 주었던 많은 것들이 들어 있다. 고혹적인 여인과 세기의 연인 마릴린 먼로와 가슴 울리는 명장면이 수두룩한 영화와 가격이 천문학 숫자라는 고흐의 그림들과 현대 여인들의 선망의 대상인 명품 등 세속적 관심사가 즐비하다.
그럼에도 그의 화면은 철학적이고, 지적이며, 고상한 것으로 보인다. 인류 지성의 상징이라는 눈부신 아우라를 견지한 책이라는 이미지에 매몰되기 때문이다. 서유라의 화면에서 물리적이며 세속적인 욕망들이 정화된 이미지로 고착될 수 있는 것은 “일정한 색채와 크기와 무게를 지닌 물리적 대상으로서 어떤 내용을 가직 있고, 어떤 언어로 존재하고, 물리적인 사물에는 어울리지 않겠지만 번역 가능한 의미를 지닌 대상으로 동시에 존재하는, 책이라는 개념 속에 존재하는 애매성”(아서 단토)에 기인한다.
쌓기와 드러내기
작가에게 있어 책은 장난감 블록에 다름 아니다. 책의 형태가 직육면체임에 착안하여 블록처럼 쌓아 올리고 벽돌로 집을 짓듯 구조를 완성하여 간다. 비록 책이 갖는 현학적 의미에서는 벗어나기 어려울지라도, 블록으로 사용된 책의 예는 민화 <책가도(冊架圖)>에서 확인할 수 있다.
흔히 병풍 형태를 띤 책가도는 여백을 없애고 병풍 면 전체가 하나의 책장처럼 사용된다. 책장은 가로 세로 판으로 분절되어 한 면이 3층 또는 4층으로 구별되었는데 사각형의 공간 하나하나에 책을 중심으로 여러 기물이 놓여 있기 마련이다. 이 경우 책은 한 질을 묶는 책함이나 책갑을 단위로 구분되어 수직으로 쌓여 있고, 책을 묶은 선장(線裝)의 실이나 목판의 판심이 드러날 뿐 대개 책명은 보이지 않는다. 혹간 책명이 적혀있는 경우조차 <주자대전>이라는 유교서적임을 알려주는 정도이다. 책가도의 책은 책이라는 이미지만 사용할 뿐 책의 내용이 드러나지 않는다. 책장의 단은 사각의 모듈로 사용되고 책은 그 안의 또 다른 모듈로 사용될 뿐이다. 책가도에는 책보다 눈길을 사로잡는 여러 기물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골동품임이 분명한 동기(銅器)와 두루마리 그림과 빙렬(氷裂)이 아름다운 도자기, 수반에 놓인 수선과 산호, 분재 그리고 명품이 분명한 벼루와 붓 등이 책 위에 놓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책을 밀어내고 책장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책이 그득한 책장을 그려 권학을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적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그림이 바로 책가도였던 것이다.
서유라의 화면은 수많은 책들이 포개고 포개어져 상하좌우로 무한 확장된다. 책가도의 화면이 병풍을 통해 무한 증식되는 공간을 보여주는 것과 상통하는 것이다. 이는 물론 젊은 작가의 전통에 대한 연구 결과라기보다는 ‘책’이라는 물질이 인간에게 의미하는 변하지 않는 기호성에 의거한 것이다. 비록 밖으로 끄집어내어 드러내지 않더라도 책 안에는 삶의 욕망이 고스란히 박혀 있는 것이다. 호화양장본의 책들 사이에 반짝이는 인쇄용지에 올려진 사진 또는 그림들은 책가도에서 확인할 수 있던 것처럼, 지식에 대한 열망과 세속적 욕망은 종이 한 장 차보다 적은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서유라가 쌓기 위하여 동원한 책들은 일관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책의 제목 혹은 제품 카탈로그일 경우 회사 이름만으로도 이들을 유형화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화면에서 주제를 보여주는 것은 텍스트가 아닌 이미지들이다. 그림 속 책의 어느 한 쪽 면이 마치 보다가 던져둔 것처럼 둥글게 접혀져 밖으로 삐죽이 나온 불과 2, 3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부분에서도 작품의 제목과 상응하는 형태들은 빛을 발한다. 물론 그 빛은 인쇄를 위한 고급 아트지의 광택을 표현한 것이지만 의도적으로 형태를 왜곡시키기 위한 작가의 장치가 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첫 개인전에서 화면 가득 빼곡히 들어차 있던 책들은 이번 전시에서는 좀더 자유로운 형태로 나타난다. 쌓인 책 사이사이에 표지가 드러나기도 하고 책면이 펼쳐져 있기도 한다. 가로로 쌓이던 책이 세로로 꼽히기도 하고 펼쳐진 책장이 다시 굽어져 하트모양이 되기도 한다. 시옷자 모양으로 책장을 벌려 서기도 하고 사람 인자 모양으로 의연히 자리하기도 하고 두 책이 서로 책장을 벌려 마주보아 삼각형을 이루기도 한다. 책장을 벌려 시옷자처럼 생긴 책 위에 가로로 책을 얹어 지읒자를 만들기도 하고, 책장이 펼쳐진 채로 굽어져 숫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각의 블록 형태가 유동적이며 유연함으로 변환하는 것이다.
책으로 가득한 도서관은 지적 호기심과 문자 흡입에 대한 욕망을 동반한다. 도서관의 욕망은 세로로 꼽힌 책들과 일렬로 늘어선 책들에로의 진입이 측면인 탓에 수직으로 나타난다. 반면 서유라의 화면은 세로로 꽂힌 책이 나타날 때조차 그 위에 가로로 얹힌 책의 책등에 주목하게 된다. 몸을 좁히고 좁혀 서로 비비적거리며 선 책들이 빽빽한 서가를 바라보며 만약 이 책들을 눕혀놓는다면 서유라의 책들처럼 아름다울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누워 있는 책들과 서 있는 책의 간극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다. 세로로 서가에 빽빽이 꽂힌 책들은 언제든 꺼내 들쳐볼 수 있는 경기 시작 전 출발선에 선 육상주자와 같다. 그곳에는 무언가 생산해야 한다는 긴장감이 감돈다. 한편 가로로 쌓인 책들은 자신의 할 일을 끝낸 느긋함과 휴식이 배어난다. 다 읽은 책을 던져두듯이 가로로 놓인 책들은 누워 있는 상태를 연상시킨다. 수많은 책들의 가로로 놓인 상태는 이미 많은 책을 읽은 상태, 지적 산책의 여정을 보여준다. 위로 쌓이는 책이 많을수록 무엇을 보았으며 무엇을 알았는지 드러내는 것이다.
욕망의 서가
금번 전시에서 서유라가 택한 주제들은 역사, 미술사, 여성문제, 명품, 사랑, 작품 위조 등이다. 가히 젊은 미술가가 처한 상황의 여러 문제들이 형상화된 것이라 할만하다. 예를 들어 <공부도>는 미술사를 통해 배우는 여러 가지를, <불후의 명작>은 남녀의 사랑이 주제이기 마련인 영화들이 드러나 있어 한 개인이 처한 상황을 미소를 머금고 바라보게 한다. 하지만 <별중의 별>이나 <새빨간 거짓말>에서는 가장 고귀하다고 말하는 인간이나 예술이 금전에 의해 평가되는 현실을 풍자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한국근대미술사>는 한국의 근대 미술가인 박수근, 조희룡 김진우 오세창 나혜석 등이 등장한다. 화면 중앙 상단은 19세기 도시적 감각을 풍미했던 조희룡의 매화가 반짝이고 김진우의 묵죽과 나목 아래 아기 업은 여인이 등장하는 박수근, 좌측 하단에는 자화상을 보여준 나혜석 등의 이미지가 드러난다. 책등에 근역서화징, 소정 변관식, 이중섭, 추사 김정희 등의 명제가 박혀 있다. 전체적으로 회색조를 띤 화면의 중앙에는 홍색의 화사한 화접도가 책갑에 부분 인쇄되어 있다. 나비와 꽃이 서로 희롱하는 생명력 넘치는 화사한 그림은 비록 크기가 작은 일부이지만 이 화면의 주제로 작용한다. 암울하고 격한 시대라는 중압감은 있지만 정신과 감성이 살아있던 시대의 기록으로서 근대를 보는 것이다. 한국 근대미술사에 대한 다양한 시각 속에서 작가는 19세기와 20세기 모두를 포괄하며 전통과 혁신을 지속하는 관점으로 근대미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견지한다.
역시 회색조로 이루어진 <한국 문화재 수난사>는 근대, 역사에 대한 인식의 확장을 주제로 한다. 화면 하단 좌측에는 일본 천리대학 소장의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를 표지로 한 ‘한국 문화재 수난사’ 그 우측에는 책등에 도자기가 그려진 ‘문화재반환’, 화면 중앙에는 일본 경신사 소장 수월관음도가 구부러진 책장 위로 보인다. 일제강점기나 그 이전에 왜구가 약탈해간 문화재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위로 숭례문이 제목 위에 장식된 ‘문화재의 보존’이란 책의 등이 보인다. 이 위쪽으로 배치한 ‘낙산사’에는 화재로 녹아내려 소실된 동종을 배치하여 관리소홀이나 미온적인 대처로 인해 사라진 문화재를 보여준다. 한편 화면 하단에 파란 색으로 장정된 ‘직지심체요절’이 배치되어 있다. 인류의 문화재인 이 책은 활판 인쇄되어 선장된 한식 장정의 책이다. 그런데 그림에는 양장본으로 표현되어 있다. 책이라는 블록의 형태에 내용을 담는 방식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책 속에 길이 있다>에서 길이 있는 풍경이 책등에 장식된 책을 보여주거나 책을 보면 유익하다는 ‘개권유익(開卷有益)’의 성어를 책 제목으로 사용하는 데서도 명확해진다. 한편 <공부도-추사>에서는 한식의 선장본 한 권이 가로로 놓여 있다. 완당전집 등 추사를 다룬 책들 속에서 이 한식 장정의 책은 추사의 실재성을 보여주는 기제이다. <공부도-진화론>은 다빈치의 인체 비례도와 라스코 동굴벽화의 동물 그림이 가로로 보인다. 다윈의 초상과 다윈이라 쓰인 책, 그리고 인간의 해골이 그려진 ‘진화론’ 책을 배치하였다. 이 화면은 아마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의미하는 ‘진화’가 인간의 생장 뿐만 아니라 인류 문명을 진화로 파악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비판하는 듯한데 천문과학기기가 실린 책이 펼쳐져 보이기 때문이다. <공부도-한국위인사>는 세로로 책을 꼽고 위에 가로로 책을 얹어 선반을 만든 뒤 다시 세로로 책을 꼽는 방식을 삼단으로 전개하여 책으로 만든 서가를 보여준다. 화면 하단 중앙의 ‘한국사’ 왼족에는 신사임당, 그 오른쪽에는 백범 김구를 배치하였고 윗단에는 안중근과 최익현 그리고 가로로 놓인 책등에 붉은 용포를 입은 세종대왕을 배치하였다. 한국사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을 시각화하여 시대의 규범을 보여주고 정형화하는 하나의 틀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다른 ‘공부도’로는 미술가로서 처한 상황을 보여주는 것들이 있다. <공부도-현대미술사>는 중앙에 ‘Art of Today’와 앤디워홀의 마밀린 먼로가 눈에 띤다. 몬드리안의 격자회화와 세잔느의 정물과 마그리트의 풍경과 뒤샹의 샘, 달리의 초현실적 세계가 부분부분 드러나 현대미술사의 획을 그은 작품들을 선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모든 책들이 가로를 기본으로 한 형태인데 유독 워홀의 책만 세로로 꼽혀 있어 작가의 팝아트에 대한 경의로 이해해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회색조를 유지하는 것은 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진지함’ 때문이었을 것인데 문화재수난사 등이 회색조를 띤 이유와도 같은 것이다. 역사에 대한 인식만큼이나 현대미술사는 젊은 작가에게 커다란 ‘공부의 대상’이었을 터이니 말이다. <공부도-페미니즘>은 여성작가로서 게릴라 걸스, 나혜석, 신디 셔먼 등 페미니즘 작가의 작품과 여성문제를 진지하게 하지만 낙관적으로 응시한다. 초록색과 연두색이 주조인 것은 이러한 청신한 시각을 강조하는 표식과도 같다. 하단에 ‘단오풍정’ 그림이 보이고 중앙에 ‘춘화’라는 책을 가로로 놓은 다음 위에 ‘미인도’를 배치한 <공부도-신윤복>은 분홍색 ‘바람의 화원’ 책이 중앙에서 빛나고 있어 여성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작가로 살기라는 문제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서 작가는 신윤복이라는 인물을 각색한 소설을 등장시킴으로써 텍스트를 자신의 작품 이미지로 인용하는 것이다.
이중섭, 김환기, 오세창 등이 등장하는 <Korean Artists>와 장 뒤뷔페, 세잔, 밀레 등이 보이는 <France Artists>, 모리스 루이스, 바스키아, 앤디 워홀, 잭슨 폴록 등이 보이는 <American Artists>는 미술사적 작가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의미의 작품이다. 미술사 전체가 작가로 이루어지고 다시 그 작가의 작품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은 <명화-책을 쌓다>에서 구체화된다. 마그리트는 빨강색으로, 네오나르도 다빈치는 주황색으로, 앤디 워홀은 노랑색으로, 김홍도는 연두색으로, 반 고흐는 초록색으로, 몬드리안은 파랑색으로, 리히텐슈타인은 남색으로, 프리다칼로는 보라색으로, 박수근은 자주색을 주조로 하였는데 작가의 이름은 책등에 써 있지만, 표지나 책 속의 내용은 그들의 대표작들로 나타나고 있어 얼굴은 없고 이름만 남은 저자와 얼굴처럼 연상되는 작품의 관계를 보여준다. 게다가 이들은 일곱 빛깔 무지개 색을 채택함으로써 하늘과 땅을 연계하는 다리로서 즉 지고의 예술과 인간을 매개하는 존재로서 미술작품을 보여준다.
한편 호소노 후지히코의 만화 ‘갤러리 페이크’가 두 권이나 그려진 <새빨간 거짓말>은 위작문제를 다룬 것이다. 갤러리 페이크에서는 위작에 대한 많은 일화들이 소재로 사용되고 있을뿐더러 갤러리 이름 자체도 ‘페이크’이다. 만화의 내용과 제목을 그대로 작품의 일부로 사용하여 주제로 확장하는데, 이중섭과 천경자를 직접 드러내 보여줌으로써 위작을 정식으로 거론한다. 미술작품의 위작에 대해 다룬 책들의 등이 드러나지만 정작 이 화면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모든 일들이 금전적 이익을 노린 데서 시작한다는 것, 즉 돈을 위해 지고한 영역이라 생가갛는 도덕성조차 외면하는 현재 한국 미술시장에 대한 비판이다. <에로스에 빠진 미술>도 같은 맥락의 그림으로 톰 웨슬만, 김관호, 쿠르베, 모딜리아니 등의 누드를 드러내 보여준다. 누드란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관음증을 만족시키는 남성적 시각의 산물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잘 나가는 상품으로서 ‘성’을 예술의 이름으로 포장한 것에 대한 비판임이 분명한데, 작품명을 작가 스스로 비판적 어투가 담긴 “에로스에 빠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세기의 사랑>은 뜨겁게 사랑했다는 실제의 연인들을 대상으로 한다. 오노 요코와 존 레넌, 마밀린 먼로와 조 디마지오 등이 스캔들과 함께 대중에게 알려졌다. 작가는 여기에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장면, 정확히는 그 장면을 찍은 사진엽서를 그려 넣음으로써 이들의 사랑이 행복한 결말에 이르지는 못했던 사실을 전한다. 남녀간의 사랑 자체도 대중들의 관심이 되는 현실은 스포츠 스타인 이승엽과 김연아를 그린 <별중의 별>에도 반영되어 있다. 은막의 인물들만이 스타였던 시대에서 새로이 스타로 자리한 스포츠 스타들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수퍼맨이나 원더우먼, 베트맨, 스파이더맨 등 각종 영웅을 다룬 <수퍼영웅>과도 상통한다.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로 그들의 각별한 신체적 능력 덕에 대중의 우상이 된 스포츠 스타들은 금전적 보상과 함께 더욱 빛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결국 인간과 예술이 금전이란 족쇄에 의해 행로를 정하게 되는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은 잡지모델의 이미지와 명품 로고가 뒤섞여 제시되는 <책과 명품>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후의 명작>은 반 고흐의 자화상,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과 버틀러가 재회하는 장면, 영화 레옹의 두 주인공이 함께하는 공간을 보여주는 장면과 백설공주, 빨강머리 앤, 어린왕자 등을 배치하여 ‘순수한 감동’을 그려내고 있다. 불후의 명작이란 작품들은 영화든, 소설이든, 그림이든 영원할 것만 같은 감동을 새겨놓는 것이고 그러한 감동을 표현한 젊은 작가의 시선은 따뜻하기만 하다.
그림 속 그림
서유라의 화면은 대중적 관심사가 모두 등장할뿐더러 유희본능의 예술적 가치를 기꺼이 수용한다는 점에서 팝아트적인 요소가 있다. 그림 여러 곳에서 워홀에 대한 경의가 드러나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짐작은 작가 스스로 팝아트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 것이 사실일 것이다. 게다가 한국 근대기 팝아트라 할 수 있는 책가도와의 연관성 있는 시각은 이 작가가 집요하게 자신의 관심을 동서고금을 드나들며 학습하고 연구하는 인물임을 드러낸다. 어린 시절 <유라의 하루>라는 일기를 책으로 출간했던 소녀는 한 뼘 만큼 자라서 자신이 습득한 지식의 책을 장정이나 제목을 재가공하여 보여준다. 붓질을 배제한 채 반짝거리는 화면은 이 재가공한 화면이 사실이라고 믿게 만든다. 마치 자신의 감정을 배제한 채 이게 현실이고, 이게 진실이라는 자신만만한 어조는 책이 갖는 확고함과 지성이라는 아우라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럼에도 이 그림들이 모두 작가의 마음 속 일부임을 드러내는 데 결코 인색하지 않은데, 바로 책장이 펼쳐졌다가 다시 구부러져 나타나는 하트 모양이 그 신호이다. 가령 <한국 문화재 수난사>의 화면에는 정말 하트 하트 하트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마음 가득 넘치는 문화재 사랑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페미니즘과 한국사에는 있는 하트가 현대미술사에는 없다. 작가를 내리누르는 현대미술의 중압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에로스에 빠진 이술>에서는 B자가 보이기도 한다. <세기의 사랑>이 하트 형태를 이룬 것과 대조적이다.
작가는 블록화된 책을 단위로 화면을 구성한다. 이 블록들은 반복적인 단위체라기보다는 구체적인 이미지를 드러내거나 혹은 그렇지 않을 때조차 작품의 주제로서 발언한다. 잘 알려진 명화이거나 인물사진 혹은 포스터 등은 책 전면에 부각되기는 하지만 대부분 접혀진 면에서 일부만이 드러난다. 명화든 화장품 선전물이든 부분만을 보고도 전체를 알 수 있는 ‘잘 알려진’ 것들이다. 하지만 책 속 내용으로 존재하는 그들은 완전히 자유롭게 그 안의 내용이 드러나지 못한다. 쌓인 책 속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파편화된 이미지이며 별개의 책에 존재하는 그들은 작가의 의도에 의해 조합되고 시각의 길을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작가가 전달하는 메시지에 도달하게 한다.
서유라의 그림 속에는 책이 있고 책 속에는 그림이 있다. ‘그림 속 그림’의 구조를 띠는 여타의 그림과 서유라의 화면이 구별되는 것은, 책 속의 그림이 그림을 찍은 사진 또는 인물을 찍은 사진을 인쇄라는 과정을 거쳐 고착시킨 것을 다시 그린 것이라는 점이다. 이 삼겹의 구조는 그림 속 그림이라는 메타회화의 구조를 넘어 서는 또 하나의 장치를 첨가시킨 것이다. 책 장 안의 부분만 드러나는 이미지를 보면서도 전체의 형태를 보고, 작가가 보여주는 부분만을 보는 관객은 수동적 독자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상자 안 비밀을 엿보는 판도라처럼 책 안에서 튀어나오는 그림들은 훔쳐보기의 관음증을 만족시킨다. 그림 속 책은 나의 책이 아닌 때문이며 또한 제목은 현실의 것이지만 적어도 생김새는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것인 때문이다.
이 호기심을 발동시키는 책들은 오래된 장서의 형태의 띠면서도 감각적인 색채와 반짝이는 장식들이 명품 가방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매혹적이라고 표현할 수박에 없는 형태와 색상의 책들은 호기심을 발동시키지만 정작 보이는 것은 어떤 한 면의 내용 정도이다. 첩첩이 겹쳐진 책은 한 번에 안에 담은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한 번에 하나씩 튀어나오는 판도라의 상자야말로 바로 책이 아니던가. 이 세상 모든 것을 담은 상자, 하지만 남성에게 선사된 선물인 여성에게는 금지되어 있던 것. 이제 책장을 넘기며 세상의 진실을 대면한 인간이 좌절의 나락으로 빠지지 않고 여전히 낙관적인 자세로 살아갈 수 있는 것도 아직 찾아야 할 것이 상자 바로 그 책 속에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던가.